본문 바로가기

Ξ 상세

그런데 작가님, 저는 그게 잘 안 됩니다 [황정은·허태임 교환 일기]
등록일 2026.04.03 / 조회 11

2026년 1월18일 편지를 받고 처음에 많이 놀랐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작가님의 마음을 제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마음 한쪽에 벼랑이 생긴 듯 가파르게 슬프셨으리라 짐작했습니다. 괜찮냐고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조차 힘에 겹고 벅찰까 봐 저는 머뭇거리고 망설였습니다. 답장이 늦은 이유입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여러 번 울었습니다. 특히 깊은 밤에 더 슬펐어요. 울다가 슬픔이 커지는 게 두려워서 초를 켜고 기도를 했습니다. 작가님이 덜 아프기를, 그 고통 속에 너무 오래 있지 말기를 바라면서요. 눈물을 닦고는 고개를 들어 초를 쳐다보았습니다. 촛불 심지부터 가장자리로, 그 테두리에서 더 바깥으로 번지는 밝음을 응시했습니다. 작가님 베란다에 산다고 한 생강초(‘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한 정식 이름은 설악초)가 떠올랐습니다. 이파리 테두리가 하얀, 그 가녘 안팎으로 자꾸만 환해지길 이끄는 모습 말입니다. 땡볕에서도 버티고 자라는 그 굳센 친구가 작가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저 스스로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전보다는 좀 어떠셔요? 사물들 정리는 웬만큼 하셨고요? 황 작가님 아버지는 세운상가를 오래 지켜온 수리공이셨지요. 한 신문사에서 아버님을 인터뷰한 글을 찾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음향 기기를 고치러 세운상가 황 대표님을 찾아갔다는 증언을 오디오 애호가들이 모인 카페 게시글에서 봤습니다. 최근에는 아버님 부고 소식에 깊이 슬퍼하는 글과 앞으로 수리를 어디에 맡겨야 하나 걱정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어요. 작가님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안식하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해 휘두른 말들, 내가 그에게, 그가 내게 기필코 입힌 상처들, 주고받은 다정과 경멸과 걱정, 원망, 연민.” 작가님의 이 말을 오래 곱씹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것들에 여전히 머물러 있나 봅니다. 제 아버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 건 작가님 덕분입니다. 제가 성인이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떠났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큰 산 아래 어느 작은 암자로 들어갔습니다. 어디에 계신 줄 알고 마음만 먹으면 찾아가 만날 수도 있는 아빠를 아빠가 아닌 수행자로 산문 밖에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제게는 스무 살 이후에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 어쩌면 성인으로 존재하기 위한 관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이가 살뜰히 가꾸던 화초와 유독 좋아했던 장서는 엄마와 언니와 저와 어린 동생이 처분해야 하는 일종의 유물(留物)이 되었어요. 그 무렵 엄마는 유방암을 얻었습니다. 엄마마저 떠날까 봐 정말 무서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를 간호했지요. 저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했으니까요. 투병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한쪽 가슴을 싹 도려낸 채 각종 치료를 견디고서야 엄마는 암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연 속 싱거운 상상으로 울적함을 견디며 이제는 다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쑥 그런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세 딸에게만은 다감하고 정이 많던 그이가 가족을 뒤로한 채 떠난 이유는 무얼까. 저는 아직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무엇에 얽혀 그렇게 갈피를 잡기 어려웠을까. 그냥 단순해지고 싶었던 걸까. 짐작할 뿐이지요. 너무 다정했던 사람이라 그 점이 가장 미웠습니다. 그럴 거면 우리에게 왜 따뜻했나. 엄마를 바라보던 차가운 표정으로 우리 세 자매를 대하지 왜 그랬나. 20년이 다 되어가는 일입니다. 원망도 이제는 옅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누구 때문에 가슴에 못이 박혀 이 몰골로 산다며 오른손을 주먹 쥐어 납작해진 왼쪽 가슴을 쾅쾅 칠 때면 다시 그때로 돌아갑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언가 싶어 부와 모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못하는 처지가 되지요. 그런 생각이 종종 저를 휘감는 날이면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요즘 수목원에는 새들이 어딘가로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둥지가 세찬 바람에 날려 곳곳에 떨어져 있어요. 땅 위에 엎어져 있는 둥지를 발견하면 볕이 잘 드는 가지 위에 도로 올려놓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장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사실은 다른 누구에게 양보 안 하고 제가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싶습니다. 이상하고 엉뚱하지요? 그런 상상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자연 아니겠어요? 또 요즘 수목원에는 쌓인 눈 위로 마가목의 새빨간 열매가 떨어져 있습니다. 마가목은 겨울눈이 말(馬)의 송곳니(牙)를 닮았다고 마아목이라 부르던 데서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 열매가 눈에 콕 박힌 채 꽁꽁 얼어붙은 모습은 마치 화석 같고 보석 같습니다. 예술 작품 같기도 해서 ‘겨울 화석’ 또는 ‘겨울 보석’이라고 명명해봅니다. 그 자연이 제 것인 양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그런 식의 싱거운 놀이를 나무들 틈에서 실컷 하고 나면 그간 쌓인 울적함을 얼마간 잊을 근력이 생깁니다. 2026년 1월26일 의성 고운사에 다녀왔습니다. 2025년 봄의 산불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3월 말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로 10만㏊의 산이 탔습니다. 작가님 계시는 파주(6만7390㏊)를 모조리 태우고도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을 더 태울 수 있는 규모입니다. 산불이 번지는 동안 동시다발로 여러 산불이 더 났습니다. 수목원에 인접한 물야의 산불도 그중 하나였어요. 소방력이 모두 의성발 산불에 집결된 터라 단 한 대의 진화 차량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목원 직원들과 지역민들이 자력으로 밤을 새워 불을 껐습니다. 산불로 비상근무를 서고 있을 때 작가님이 안부를 물어와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뉴스를 봤다며 괜찮냐고 무척 걱정하셨죠. 그때 주고받은 메일을 새삼 여기에 옮겨봅니다. (Mar 26, 2025, 3:21 AM) 걱정이 되어서 계속 뉴스를 찾아보고 있어요. 물야면이면 바로 근처인데 어떻게 계실지 걱정도 되고요. 더는 큰일이 없기를, 더는 불이 번지지 않기를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답신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밤에 마음이라도 어떻게든 보태고 싶어서 메일 드려요. 금방 또 메일 드릴게요. (Mar 26, 2025, 10:20 AM) 작가님, 이번 산불 잔혹하네요. 불이 물야에서 큰 산(문수산)을 넘으면 바로 수목원(호랑이숲)이라 저와 동료들은 밤샘 비상근무를 섰어요. 문수산에는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그런지 불길이 넘어오지 못하고 따뜻한 남쪽으로 방향을 틀더군요. 다행히 물야 불은 거의 꺼졌습니다. 안동, 의성, 영양, 영덕의 피해가 자꾸 커지고 있어서 너무 걱정입니다. 나라가 수상하고 지구가 이상해요. 태임 드림 (Mar 26, 2025, 1:01 PM) 그렇죠 잔혹해요. 너무 잔혹해요. 아마도 밤새 근무를 하실 것 같아 늦은 시간임에도 메일을 드렸어요. 계속 산불 소식을 보고 있고요. 수상하고 괴상한 시국에 산불까지 겹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불 근처에 계셔서 더하실 테니 아무래도 식사를 잘 챙겨 드시고 몸을 잘 돌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작은 것이라도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꼭 말씀해주시고요. 내내 건강 살피시기를 바라며, 정은 드림 물야의 산불은 큰 피해 없이 빨리 꺼졌지만 정말 극심한 피해를 입은 곳이 의성 고운사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국가유산이 탔습니다. 절을 에워싼 숲도 거의 탔습니다. 고운사 사찰림 249㏊ 중 243㏊가 사라졌어요. 그 숲을 다시 살리려고 사찰 일대에서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지 스님의 결연한 의지로 환경단체들과 생태 분야 연구진이 연대해서 성사된 일이지요. 그 중간보고회가 오늘 고운사에서 있었어요. 자연 회복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산림정책 대안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는 주지 스님의 여는 말을 시작으로 주최 측은 그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피해지 복구에서 핵심은 식생의 회복탄력성과 토양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야생동물이 숲을 복원하는 핵심 주체”라며 이들의 활동이 회복의 지표가 된다는 설명 등이 있었습니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터전이던 보호구역도 3500여 ㏊가 탔습니다. 그곳을 저는 2025년 5월부터 10월까지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대부분이 주왕산국립공원입니다.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와 같은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의 회복력은 대단했습니다. 움을 틔우는 속도로 보아 자연스럽게 회복될 지역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반대로 불탄 소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았습니다. 재가 되지도 못한 채 서 있는 죽은 그 나무가 쓰러지면 사람과 동식물이 깔릴 수도 있습니다. 전체 피해지의 6%에 해당하는 190여 ㏊는 그러한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었어요. 무분별한 벌채가 아니라 민가 주변에서 쓰러질 위험이 있는 나무를 솎아서 베야 하는 까닭입니다.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거나 산사태가 우려되는 그 위험지역은 특히 얼었던 땅이 녹는 해빙기와 여름철 우기를 조심해야 합니다. 흙이 머금을 수 있는 수분이 한계치를 넘을 때 그 흙은 물을 토해내며 아래로 쏟아져 내리니까요. 식물은 그러한 재난을 막습니다. 흙을 그러쥐고 있는 식물의 뿌리가 그걸 가능하게 하지요. 그런데 다 타서 식물이 없고 식물이 스스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심어줘서 위험을 예방해야 합니다. 아무 식물을 심을 순 없습니다. 원래 그 땅에 살던 식물을 심어야 하지요. 조사가 끝난 10월 이후에도 제가 그 일대를 바쁘게 다닌 이유는 산불 피해를 면한 곳에서 생존한 초목들의 씨앗을 수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목원 양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그 씨앗을 틔워 키우고 있습니다. 산불 피해지 복원에 동원될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복원해야 할 보호구역의 97.5%가 사유림입니다. 그 산의 소유주와 국립공원 간의 갈등은 무척 오래되었다 합니다. 과거 전두환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국립공원에 편입시킨 거라고 주왕산 달기약수탕 인근 산주들은 말합니다. 이참에 보호구역으로서의 가치를 잃었으니 복원이고 뭐고 산주가 나서서 지키겠다고 합니다. 그간 규제만 있지 않았냐고요.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고요. 거기서 소득도 얻고 싶다고 합니다. 연구자와 공무원과 국립공원 탐방객들도 이곳 산주들의 현실을 좀 알아달라고 토로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식물은 재난을 막지만 사람이 심어줘야 한다 제가 5월부터 진행한 보호구역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행안부가 주도한 피해 실태조사가 먼저 있었습니다. 각종 재산에 대한 피해를 파악해서 보상 정도를 예측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저는 산림 피해를 조사하는 파트에 있었습니다. 합동 조사다 보니 오리엔테이션을 여러 부처와 지자체가 모여 함께 진행했고 주최 측에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불법 건축물은 보상으로부터 제외된다는 원칙에 한 농민이 물었습니다. 건축물로 신고하고 쓰는 수확물 창고며 농기구 적재 공간이 이 시골에 얼마나 되겠느냐고요. 그때 저는 이주민 생각을 했습니다. 농촌에서 이주노동자의 거처는 법적인 건축물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니, 그들 자체가 불법 이주민인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한번은 제가 산불 피해지 보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산불특별법 토론회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자국민 피해 보상도 다 못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답변을 질책처럼 들었습니다. 가족을 떠나기 전 제 아버지는 보일러 수리공으로 일하셨습니다. 어릴 적 제가 다닌 시골 중학교의 행정실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연년생인 언니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 보일러 수리공이 되셨지요. 한겨울에 일이 많았습니다. 그는 맹추위를 마땅히 견뎌야 하는 노동자였습니다. 보일러 고칠 일이 없을 때면 각종 건설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지금은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이 일을 합니다. 저는 그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되도록 모른 척하고 싶습니다.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저는 그게 잘 안 됩니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누군가의 자식이잖아요. 2026년 2월2일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통증이 심합니다. 지난주 내내 매일 아침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돋아난 수포를 치료하고 약을 탔습니다. 아파서 어리바리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른쪽 엉덩이에만 바늘 자국이 5개가 생겼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 지난 토요일에는 반대편 엉덩이를 내밀었습니다. 이제는 왼쪽 엉덩이에도 바늘 자국이 2개입니다. 그러면서도 오후에는 출근해서 업무를 봤습니다. 며칠 회사를 등지고 몸을 좀 돌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통증 때문에 자다가 깹니다. 물집이 난 부위를 밤송이가 박박 긁듯이 아픕니다. 아까시나무 큰 가시가 쿡 찌르는 것 같은 고통도 있습니다. 바깥은 무척 춥고 달은 환합니다. 음력 보름입니다. 2026년 2월6일 부사는 여전히 아삭합니다. 춘양에 살면서 자랑 중 하나는 냉장고에 사과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수확이 한창이던 11월 초부터 동네 분들한테 내내 얻어먹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부사의 가장 큰 매력은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점 같아요.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다면 단맛과 아삭함을 끈질기게 유지하니까요. 이 동네 사과 농민들은 동해에서 바닷물을 구해와 사과나무에 먹입니다. 나무도 사람처럼 적당한 소금물이 몸에 이롭습니다. 반대로 소금을 잔뜩 독하게 타면 잡초를 잡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나무를 죽일 때도 그 방법을 씁니다. 부사가 익기 시작하던 여름에는 아오리와 썸머킹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로와 감홍이 나오더군요. 언젠가부터 감홍, 하면 작가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가님을 처음 대면했던 그해 10월 마지막 수요일 팟캐스트 녹음실에서 제게 그 사과 한 알을 주셨기 때문이지요. 문경에서 온 감홍이라 하셨어요. 서울에서 사과를 얻어 봉화로 돌아오는 일이 제게는 좀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과는 봉화, 하고도 제가 있는 춘양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봉화는 사과의 국내 최대 산지 중 하나, 말 그대로 사과의 고장이니까요. 그런데 작가님이 사과를 그것도 문경에서 나온 특별한 품종을 서울 한복판에서 맛보라며 나눠주셨어요. 그날 후로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 한 알, 한 알을 볼 때마다 작가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여러 품종의 사과가 익고 수확되는 동안 계속 그랬습니다. 춘양에 사과 과수원이 얼마나 많은지 보셨겠지요. 2026년 2월8일 저는 추운 게 싫습니다. 그럼에도 추워지길 기다립니다. ‘붕어빵마차’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사온 붕어빵을 둥지 속 아기 새처럼 납죽 받아먹던 시절을 저는 행복했다고 기억합니다. 일하다 얼어서 퉁퉁 부었을 손으로 아빠는 그날 번 지폐를 노점 상인에게 내밀며 붕어빵 봉투를 건네받았겠지요. 그 교환 과정에서 두 분은 분명 웃으며 대화를 나눴을 거예요. 작가님께서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 사이에 쓰신 에세이집에 그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잉어빵을 파는 노점 상인이 웃었다. 그 자리에서 잉어빵 덤을 몇 개나 받아먹었다. 상인은 사람 상대하는 게 쑥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세뱃돈 집어주듯이 자, 자, 하며 자꾸 집어서 줬다(〈작은 일기〉, 154쪽, 황정은, 창비, 2025).” 겨울 추위에 만병초 상록의 이파리는 참 별스럽습니다. 더 추운 날 잎을 잔뜩 오므렸다가 덜 추운 날 어느 정도 펼치기를 반복하거든요. 눈에 파묻혀서는 잎을 최대한 접습니다. 그렇게 모은 온기를 혼자 안 쓰고 나눕니다. 얼마 지나서 보면 오므린 만병초 둘레로 눈이 동그랗게 녹아 있어요. 아침 기운이 영하 16℃까지 내려간 날 맑고 밝고 따뜻한 생명의 기운을 저는 그렇게 목격합니다. 저만치 봄이 오는 게 보입니다. 춘양에서, 태임 드림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이전글
충남교육청, 권역별 다문화교육 정책 나눔자리 개최
다음글
파편으로 보는 역사의 재구성 그림이 '읽힌다' [Weekend 문화]